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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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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에 책 정보 없음...;;;







P91,

..........흥미롭게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을 '달팽이'라고 부른다. 역시 이 두 나라 사람들은 라틴계 문화의 뿌리도 같고 디자인 강국답게 보는 눈도 비슷하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그것을 '원숭이 꼬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동유럽 폴란드나 루마니아 사람들은 꼬리를 달지 않고 그냥 '작은 원숭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나라가 달라지면 @의 모양이 원숭이 꼬리로 보이기도 하고 원숭이의 귀나 항문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터키에서는 '귀'라고 부르니 말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북유럽의 핀란드로 가면 '원숭이 꼬리'가 '고양이 꼬리'로 바뀌게 되고, 러시아로 가면 그것이 원숭이와는 앙숙인 '개(소바카)'로 둔갑한다는 사실이다.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다르다. 중국 사람들은 점잖게 쥐에다 노자를 붙여 '라오수' 또는 '라오수하오'라 부른다. 일본은 쓰나미의 원조인 태양의 나라답게 '나루토(소용돌이)'라고 한다. 혹은 늘 하는 버릇처럼 일본식 영어로 '앳 마크'라고도 한다.


아무리 봐도 달팽이나 원숭이 꼬리로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오리, 개, 그리고 쥐 모양과는 닮은 데라곤 없는데도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니 문화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스웨덴에서는 '코끼리의 몸통'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달팽이에서 코끼리까지 크기가 그렇게 달라 질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러니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30여 개의 인터넷 사용국 중에서 @과 제일 가까운 이름은 우리나라의 골뱅인 것 같다. 골뱅이의 윗단면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모양이나 크기까지 어느 나라 사람이든 무릎을 칠 것 같다. 더구나 e메일의 @으로 찌개를 끓여먹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한국의 골뱅이뿐이다(물론 국제적으로 말썽이 많은 개와 달팽이를 뺀다면 말이다).


@을 '앳 사인'이라고 부르는 미국인들이 디지털적 논리를 반영한 것이라면, 한국의 골뱅이는 시골의 맑은 냇물을 연상시키는 시각에 찌개의 얼큰한 미각까지 느끼게 하는 아날로그적 발상과 감성의 산물이다.





P151,

............BC는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의 기원전을 의미하는 약자이고, AD는 예수가 태어난 기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요즘의 BC는 컴퓨터 이전을 뜻하고 AD는 디지털 이후의 시대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휴대전화를 왼손에 들고 받고 있는 사람은 BC시대의 아날로그 인간이다. 엄지족들은 오른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번호를 찍지만, 옛날 기계식 전화기를 사용해왔던 아날로그인들은 왼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전화 다이얼을 돌려 버릇했기 때문이다.





P170~172,

............오늘날 한자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보(情報)'란 말은 1876년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한자식 수입 용어의 하나이다. 프랑스의 병서를 번역한 불국 보병진중중요무실지 연습 궤전에서 '앵포르마시옹'을 '적정보고'라고 번역하고 그것을 줄여 정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므로 식민지시기에 일본의 군사문화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이 말은 주로 '첩보(intelligence)'나 군사 기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통신기기가 보급되고 미래학자나 문명론자들에 의해 정보화시대나 정보혁명이란 말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보라는 말은 급속도로 유행하여 그 의미도 잡다한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정보란 용어는 서구에서 사용해온 원래 인포메이션의 뜻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영어의 경우에는 인포메이션 에이지인데 한구에서 민주화, 자유화란 말처럼 그 말에 꼭 화를 붙여 정보화시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와 정보시대는 다르다ㅏ. 후자는 직접 정보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가리키지만 정보화라고 할 때는 앞으로 누리게 될 유토피아적 환경을 의미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정보화시대, 정보화 사회라는 말은 정보시대와 정보사회를 영원히 이상화, 유예화하는 것으로, 정보화를 가로막고 있는 저해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 스파이, 산업정보 또는 일급 정보, 이급 정보, 등 등급을 붙인 정보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정보와 첩오를 구별 없이 혼용하고 있다. 그래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발신자의 입장에서는 정보가 물과 같은 액체로 인식되어 "정보가 샜다", "정보가 흘러갔다"라고 하고, 정보를 구하는 수신자의 입장에서는 "정보를 캔다", "정보를 빼돌려라"라고 하여 흙에 묻힌 광석과 같은 고체로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정보문명이 갖고 있는 개방성과 교감성과는 달리 폐쇄적이고 오컬트적인 비의석을 지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