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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변명-권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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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변명
국내도서
저자 : / 권영설역
출판 : 거름 200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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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p14~15,

수년 사이, 일의 향내를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바로 예전의 직장인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직자들이다. 그들이 허공에 대고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미친 듯이 일하고 싶다"는 메아리 없는 외침.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는 당신은 그 향내를 잘 알지 못한다. 상상하기도 어렵다. 멀리 떠나 봐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당신들만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직장인들이 오래오래 근무하고, 은퇴한 뒤에야 일의 향내가 그리워질 날을 맞는 '정상적인' 시절이 빨리 오기를 빈다. 한창 일할 나이에 회사 밖으로 밀녀나, 멀반치에서 일의 향내와 노동의 온기 그리고 직장 냄새를 그리워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미치도록 일하고 싶은 사람은 미치도록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직장을 다닐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크게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그 꿈을 이루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지내고 싶은 이들도 계속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극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직장인 편이 아닌 것 같다. 노동력 잉여, 저성장, 구조 조정의 시대에는 일하려는 사람만 많다. 남아도는 자리란 없다. 그나마 갖고 있는 명함마저 잃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다 같은 직장인끼리도 잘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현대를 다니거나 삼성에 있거나, 대기업 말참이건 중소기업 신입 사원이건 간격을 절대 좁히지 못할 만큼 격차가 나지는 않았다. 이제는 아니다. 커가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덩달아 성장하고, 저물어 가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직장인은 날로 피폐해 간다. 같은 직장 안에서도 '돈 되는' 부서와 없어도 그만인 부서 사이에는 인사 교류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배들이 사라지고 연공서열도 깨져 승승장구하는 운 좋은 후배들이 있는가 하면, 용도 폐기되어 '과거의 끈'이 다시 이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고참들도 있다. 전문 직종에 있는 이들은 억대 연봉을 밝히기 뭣해서인지 연봉 표시란에 '아홉 자릿수'라고만 적는다. 그런가 하면 이미 전체 근로자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가운데에는 한 달 100만 원 벌이가 감지덕지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양극화는 우리가 전환기 한가운데에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당신만 갈 곳 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그렇다. 격차는 항상 상대적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직장인이라도 멀리 보고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알 수 없다. 몸담고 있는 회사가, 조직이 휘청대면 별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면, 오래도록 돈을 벌고 싶다면 직장인들 스스로 기회를 개척하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p30~31,

"필요한 작업은 모두 7,882개. 이 가운데 949개에는 건강하고 온전하며 완벽한 육체를 가진 남자가 필요하다. 3,338개 공정은 육체적으로 튼튼한 보통 남자면 된다. 나머지는 여자나 청소년들이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670개 공정은 다리 없는 남자도 할 수 있고 2,637건은 다리 하나 있는 남자, 2개는 팔 없는 남자, 715개는 팔 하나 있는 남자, 10개는 장님이 할 수 있다. 

스튜어트 크레이너, 75가지 위대한 결정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포드에게 종업원은 사람이 아니었다. 물건을 나르는 데 필요한 '다리'요, 공구를 집어 들어올리는 데 쓰이는 '팔'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작업에만 필요한 도구요, 쓸 때까지 쓰다 닳아서 작아지면 버리는 소모품 말이다. 오죽하면 "두 팔만 있으면 되는 작업에 왜 인간 하나를 통째로 고용해야 하느냐"며 억울해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기야 이런 비정한 아이디어가 나중에 컨베이어 시스템, 로봇, 공작기계 등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보면 사업가적 감각은 뛰어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벌려고 또는 실직하지 않으려고"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포드 시대의 노동자 신세와 마찬가지가 된다. "거 봐라, 너희들은 결국 그렇단 말이야"하는 포드의 비아냥을 면치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지금은 포드 시대와 사정이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포드의 이런 독설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노동력이 남고 일자리가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꼭 그렇지 않은가? 노동력 잉여 시대, 신기술 등장 시기의 직장인은 그 가치를 인정 받기 어렵다. 더 낮은 임금으로도 일하겠다는 대체 인력은 넘쳐나고, 새 기술은 구시대의 '장인'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컴퓨터 조판이 시작되면서 신문사에서 활자를 뽑는 문선공이 사라진지 오래다. 인터넷과 그에 기반한 전자상거래는 '중간자'들을 없애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쇼핑몰은 영업사원들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포드가 다시 살아난다면 "영업사원 1천 명이 하던 일을 인터넷 홈페이지가 다 할 수 있다"며 기뻐할 것이 뻔하다. 



p39~41,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장례식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사소한 문제이다."

"시장은 끝없이 변화하며 제품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환경에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조직은 -즉 변화에 대비하는 절차를 확립하지 못한 기업은-그 어떤 기업이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조지 스미스 외, 위대한 기업가들에게 배우는 경영 불변의 법칙


이런 얘기들은 당신이 신문에서 방송에서 요즘 자주 듣는 얘기들 아닌가. 당신 회사 사장이 최근에 한 얘기와는 얼마나 다른가. 당신을 짓누르고 있는 강박 관념의 골자도 '변화' 아닐까. "세상이 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 전환의 시대에 나는 왜 이렇게 그냥 그대로 일까?"하고 걱정한 적은 없는가.


그런데 이 인용문들은 언제 나온 얘기들일까? 앞의 것은 헨리 포드가, 뒤의 것은 제너럴모터스(GM)의 사장이었던 알프레드 슬론이 한 말이다. 두 사람 다 지난 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미국의 경영자들이다. 좀 과장하자면 1백 년 된 얘기란 말이다. 하기야 삼성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했던 것도 벌써 10년된 얘기 아닌가.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톰 피터스의 이런 얘기는 혹시 기억나지 않는가?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이 고대 그리스에 있었다. 바로 헤라클레이토스다. 그는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다"며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치 않는 진리"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수천 년 된 얘기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로 떨어진 진리가 아니다. 새 천년, 한국의 직장 사회에 변화라는 개념이 돌연 나타나 새로운 '행동 강령'으로 득세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종업원들은 모아 놓고 "면하지 않으면 도태한다"고 교육하는 것은 "양심에 따라 살아야 행복하다"고 설교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야말로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살아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부지불식간에 실천하고 있는 생존의 양식이다. 그저 "변화해야 한다"는 한마디로 뭉뚱그릴 수 없는 구체적인 노력과 정교한 전략, 끊임없는 개선 정신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실제가 이러한데도 곳곳에서 변화를 강요하는 목소리만 높다. 어쩌자는 말인가. 부장이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사내 시스템이 개선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신입 사원 혼자 어떻게 변화하란 말인가. 임원들이 툭하면 회의를 하자고 시간을 빼앗아 가는데 부장, 차장이 어떻게 시스템을 바꾸란 말인가. 맡은 공정에서 20년간 개선 작업을 벌여 와 명장 소리를 듣는 이에게 예전의 방식을 버리라고 하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가. 큰 이야기는 항상 겉돌게 되어 있다. 실천하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도리가 없어서다. 모두들 변해야 한다고 소리만 높이고 정작 변하는 사람은 적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필자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지금이 초보 시대여서다. 암중모색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초보들끼리의 근거 없는 호들갑이 서로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자식보다 공부가 짧은 부모가 고시 공부를 하는 자식에게 해줄 말이 뭐겠는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원론밖에 더 있겠는가. 변화에 관한 언명들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무엇이 미래 사회를 움직이는 동인이 될지 파악이 안 된 상태니 그저 "변화하라"고 서로 재촉할 뿐이다. 그것이 집단적인 조바심으로 되어 가니 일은 꼬인다. 


그러니까 원인은 변화를 거부하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급변하지 않는다. 아니, 급변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당장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변화 적응 논리'는 없다. 그런 방법이 있다손 치더라도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전쟁 중에 살아남는 방법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모두에게 두루 통하는 피란법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p139~141,

.............예를 들어 전자회사 재무팀 차장인 K씨가 있다고 하자. 그의 목표는 10년 후 자기 회사 CFO(재무 담당 임원)가 되는 것이다. 임원 승진 이전에 회사를 나가야 할 경우가 생기면 IPO(기업공개) 등을 앞두고 있는 벤처 회사를 상대로 한 재무컨설팅업체를 창업하기로 최악의 시나리오도 세워 두었다. 중장기 과제는 이 두 가지 목표 달성에 꼭 필요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찾아 리스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리스트를 중심으로 10년간의 액션 플랜도 짰다고 하자. 


K씨가 인문학 전공자라면 그는 야간대학원에 진학해 재무를 전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회사 규모에 따라 CFA 자격증을 따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에게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필요할까? 마이크로소프트 공인 제품 전문가(MCPS) 자격증은 어떤가? 혹시 변호사 자격증은 도움이 될까? 옆에 서 있는 우리들도 그에게 필요한 학위와 자격증을 골라낼 수 있다. 그의 비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경영학 석사 학위와 CFA 자격증은 '보석'이 될 수 있지만 공인중개사나 MCPS 자격증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액새서리는 전당포에서도 받지 않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에 투자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낭비다. 


중장기 계획을 확실히 세우고 나면 우리는 보석이 될 학위 또는 자격증과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을 가려낼 수 있다. 중장기 비전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남은 것은 용맹 정진뿐이다. 반대로 필요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미련을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나중에 취득한 대학원 학위보다 학부를 더 따지고, 관련 없는 자격증에는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것이 대다수 기업의 현실 아닌가? 액세서리라고 판단되면 아무리 좋아 보여도 투자 대상에서 과감히 빼놓을 수 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이라서, 해 두면 어쨌든 좋을 것이기 때문에 일단 시작하고 보는 사람은 아직 20대이거나 직장이 없거나 또는 중장기 계획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30대에 들어선 직장이라면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데 항상 조심해야 한다. '가지 않을 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가는 길 앞에 놓여 있는 여러 갈래 길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정말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도 실행에 들어가기 전에 넘어야 할 벽이 또 있다. 아무리 좋은 신규 설비라도 장부를 수년간 빨갛게(적자로) 물들이 투자 규모면 기업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시간과 돈, 능력이라는 자원에 비추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라면 정말 필요한 것이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p148,

..................당시은 혹시 노력한 만큼 승진이나 보수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만은 아닌가? 아니면 반대로 워낙 가진 자원이 없어 지금의 자리 정도면 다행이라며 자포자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전략을 세워서 그 계획대로 노력해 보지 않았다면 불만을 가질 자격도 자포자기할 이유도 없다. 당신이 설계하지 않은 인생이 당신을 위해 알아서 혁명을 일으켜 주기를 기대하지 말라.




p157,

"10년쯤 뒤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으로서의 미래는 인간의 몫이다. 유한한 인간이 마음대로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택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이 호주로 이민을 간다면 한국에서의 미래는 없어진다. 호주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고국에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당신의 모습은 미래에서 지워진다. 당신이 삼성이든 현대든 택해 입사하는 순간, 공무원이나 연예인이 될 수도 있었던 당신의 가능한 미래는 지워진다.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택한 것 주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당신이 택한 것은 바로 당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미래다. 그러니 "나는 10년쯤 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은 "나는 10년 뒤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묻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미래는 절반 이상이 당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