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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시티브 도나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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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국내도서
저자 : 스티브 도나휴(Steve Donahue) / 고상숙역
출판 : 김영사 200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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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p46~47,

여행 자체가 목적지보다 더 흥미로워지는 것은 좋은 징후이다. 그것은 또한 사하라 사막에서의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길도 없는 막막한 사막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차 앞의 전방 4, 5미터 밖에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 숨어 있던 바위가 차축을 들이받을 수도 있고, 바로 그 위에 다다르는 순간까지 위험할 정도로 부드러운 모래를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막 그 자체가, 모래의 색깔과 조직, 단단한 정도가 변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위쪽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다. 우리의 경우에는 해변이 목적지이기 때문에 위를 쳐다보거나 저 멀리 앞을 응시하게 된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른거리는 사막의 지평선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사하라 사막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산의 정상에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산 자체를 놓칠 수도 있다. 인생의 사막에서도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여행 그 자체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친구 알론조의 아버지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암은 느닷없이 찾아왔고, 진전도 빨랐다. 매주 금요일 저녁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할 때마다 모두들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한다. 말기 암은 정말 가혹한 병이지만, 우리에게 순간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가르쳐주는 훌륭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바로 발밑에 깔려 있는 모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기 위해 누군가 죽는 그런 일이 닥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p90~91,

우리가 산악인과 같은 마음가짐에서 사막의 은유 쪽으로 사고 방식을 바꾸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건너고 있는 바로 그 사막에 지배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막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오아시스는 우리가 사막에서 쉴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준다. 사막에서 휴식을 취하면 사막 자체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휴식을 취하는 오아시스건, 사색을 하는 오아시스건, 또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오아시스건 모든 오아시는 매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연습을 하루 있는 공간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고, 즐거운 순간은 종종 이 오아시스에서 일어난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경험은 우리를 아주 완전하게 빨아들여서 우리는 먼 앞의 목적이나 목적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아시는 온전히 현재에 사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사막에서도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연습을 하게 된다. 




p111,

젊은 사람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 바로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라는 말이다. 아이들은 등산가와 같은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들이 목표를 세우도록 격려하고, 목표를 달성하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젊은 날에 이룬 것이 인생의 절반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강한 자아(큰 자아와는 다르다)를 키워 나가야 한다. 이는 나중에 사막을 건널 때에 필요한, 공기를 빼는 작업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성공으로 덮여 있지 않다. 때로는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도 달려야 한다. 성공적인 삶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사막에 잡힌 발목을 풀기 위해서는 자아가 한 번쯤은 패배를 겪도록 놓아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으며,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또는 약점을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공기를 빼고 나면 자아는 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p139,

어쨌든 그 노래와 내 황량한 주변 환경 덕분에 나는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혼자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회피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도 없었다. 그저 나 혼자 느껴야 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나는 덜 외로워졌다. 이 사막, 이혼 후의 외로움에 대해 얼마나 많은 노래가 만들어졌던가. 그건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길을 걸어왔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나처럼 혼자라고 느끼는 동료를 수천 명 만난 기분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아마 엘비스가 아직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노래를 불러댔을 터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혼자라는 사실을 참을 수 있게 되면 지원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저 잠시 혼자 있을 수 있으면 그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심지어는 앞으로 가야 할 방향까지 볼 수 있다. 



p166~167,

인생에서 느닷없이 날아오는 타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준비를 잘 해놓고 있어도, 아무리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도 뜻하지 않는 곳에서 나뭇가지가 튀어나와 머리를 후려 갈기기도 한다. 유목민처럼 셰슈를 한 덕분에 나는 모래 폭푼으로부터 머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럭을 타고 달리던 첫날 밤 내가 배운 가장 귀한 교훈은 바로 언제 몸을 숙여야 하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지의 장소로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문제나 절망스러운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미리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몸을 숙여야 할지를 배워야 한다. 불쾌한 일이 발생하면 태도를 바꾸어서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그냥 한 대 얻어맞는 것으로 끝날 수 있도록 태도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