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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의 도-바보철학에서 배우는, 정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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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의 도 - 바보철학에서 배우는
국내도서
저자 : 정판교
출판 : 파라북스 200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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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홍콩의 대부호 이조기는 이렇게 말했다.


"선견지명을 키우는 것은 성공을 위한 필수역량이다.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해야 타인보다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다."


한발 앞서 나가는 것이 무모한 모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조사와 연구, 시장예측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남보다 한발 빠르게 행동하려면 남다른 능력과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p40~42,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5대 10국 시기의 혼란상을 겪으며 역대 왕조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왔다. 송나라 군대가 촉나라를 정복하자 촉나라 왕 맹창은 사람을 시켜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요강을 조광윤에게 보냈다. 그러나 조광윤은 요강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버럭 화를 냈다. 


"이따위 요강을 장식하는 데 보석을 허비하다니 양식을 담는 그릇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었을꼬? 이토록 사치스럽고 타락한 자가 왕위에 있으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조광윤은 평상시 지출을 최소화했으며, 타고 다니는 수레나 말도 황제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했다. 침실의 커튼이나 궁궐 안의 휘장도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소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처럼 절약을 몸소 실천했던 그는 가족들에게도 절대 탐욕과 사치를 일삼아서는 안 됨을 일러두었다.


언젠가 조광윤의 딸 위나라 장공주가 물총새 깃털로 장식한 저고리를 입고 부친을 알현하기 위해 입궁했다. 딸의 옷차림을 보고 얼굴이 굳어진 조광윤은 그녀를 크게 나무랐다.


"돌아가자마자 당장 그 옷을 벗어버리고 두 번 다시 입지 말거라. 그리고 앞으로 물총새 깃털 따위로 옷을 장식하는 일은 없도록 해라."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러세요? 새 깃털 몇 개쯤 달았을 뿐이잖아요."


공주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대답하자 조광윤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란다. 네가 이런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들도 너나없이 따라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내 물총새 깃털의 가격이 껑충 뛸 것이고, 일부 이익에 눈먼 백성들이 여기저기서 물총새를 잡아다가 밀반입해 들여오는 현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너의 행동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느끼느냐?"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황후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제위에 계시면서 가마에 그 흔한 황금장식조차 안 하시니 황제로서 품위가 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조광윤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황제의 신분으로 궁전을 온통 금은으로 장식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소? 그러나 짐은 한 나라의 군주로서 백성의 처지를 헤아려야 할 의무가 있으니 국가의 재산을 어찌 함부로 쓸 수 있겠소? 나만 생각하고 아무 거리낌없이 사치를 일삼는다면 백성은 어찌 한단 말이오? 그리고 그들이 흥청망청 나랏돈을 허비하는 황제를 어떻게 보겠소?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마시오."


조광윤은 절약해야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p43,

......돈이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삶의 전부인 냥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도리, 즉 인품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인품이 뛰어난 성현은 가물에 콩 나듯 귀하다. 


한 시인이 시에서 언급했듯이 '세상에는 죽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익과 의리라는 갈림길에서 이익이 아닌 의리를 선택한다. 이익은 버릴 수 있어도 의리는 절대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다.


사람은 누구든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돈을 벌 때도 도리를 따져야 한다. 소인배들은 돈을 벌기 위해 비열하고 파렴치한 수단까지 동원한다. 반면 군자는 돈을 벌더라도 도리부터 생각하고 정도를 걷는다. 근면과 검소함으로 부를 쌓고 절대 약삭빠른 속임수로 주머니를 채우는 법이 없다. 



p180~181,

............나이키사는 세계적인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전문 신발업체 중 하나로 세계 최대규모의 스포츠화 공급업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장에서부터 7, 8천여명에 이르는 직원들까지 신발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회사는 모든 역량을 제품판매와 디자인에만 쏟아붓는다. 나이키사에는 자체 신발공장도 없고 직접 신발제작에 참여하는 직원도 없다. 그러니 신발 생산설비를 따로 구비할 필요는 더더욱 없을 뿐더러 신규 디자인의 샘플조차 회사에서 직접 제작하지 않는다. 


나이키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사무실에 앉아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하청업체를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한 국가와 제휴를 맺으면 곧바로 서류들을 싸들고 다른 나라, 다른 도시로 날아간다. 그들은 이렇게 비용이 저렴하고 품질이 확실하며 납품약속을 잘 지키는 신발 생산업체를 물색하는 것이다.


하청업체를 제조비용이 높아지면 나이키사는 당장 주문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파트너를 찾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5년간 그들은 20개 생산 하도급업체와 계약을 파기하고 35개 신규 파트너와 새로 제휴를 맺은 바 있다. 현재는 전 세계 50여 개 공장이 나이키의 제품생산을 위해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오랜 경영방침에 따라 나이키는 신발의 새로운 스타일을 연구하고 디자인하는 데 주력한다. 모든 에너지를 제품개발에 집중하다 보니 당연히 멋진 디자인과 성능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제품품질이나 납품일에 대해 각지의 생산업체들은 알아서 회사와 체결한 협의조항에 따라 엄격히 집행한다. 그 외 생산업체의 공장, 생산설비, 제품 생산방식 등에 관해서는 나이키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현재 세계 각지의 생산라인에서 생산되는 '나이키' 신발 모델은 천여 종이 넘는다. 나이키사는 매년 평균 100개의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있으며, 제품 생산량도 매년 9천만 켤레 이상이다.


노련한 기업가들은 타인과의 협조관계를 최대한 활용해 자신의 사업에 기를 불어 넣는다. 나이키사는 핵심역량은 자신들이 맡고 나머지는 외주를 내보내는 그야말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경영 전략을 채택했다.


신발 제조업체들과의 제휴로 초일류 브랜드 구축에 성공하는 한편 생산설비 구매비용을 절약하고 생산관리 단계를 없앤 덕분에 더욱 효율적인 경영을 실현할 수 있었다.






p299~302,

............이가성이 맨 처음 영업사원으로 취직한 곳은 주로 알루미늄이나 양철로 만든 양동이를 취급하는 오금공장이었다. 당시 주된 영업대상은 일용잡화를 파는 점포들로서, 그 수가 빤하다 보니 살벌하리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이에 17세의 이가성은 주력인 곳은 피하고 약한 틈새를 찾아 공략하는 이른바 '피실취허' 전략을 구사했다. 남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길을 피해 독자적인 판로를 마련하여 보다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것이다. 


그는 대량의 양동이를 구비해야 하는 호텔이나 여관이 실수요자임을 파악하고 그쪽으로 영업역량을 집중했다. 물론 영업사원이 직접 여관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직거래 할 경우 우선 가격 면에서 훨씬 저렴할 뿐 아니라 시장에 나가 물건을 싣고 와야 하는 수고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과연 그의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한 여관에서 100개의 양동이를 한 번에 판 적도 있었다.


일반 가정집도 비록 가구당 수요는 적었지만 한데 모으면 꽤 큰 잠재시장이었으므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이가성은 이 시장에 좀더 효율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주로 나이 든 가정주부를 집중공략하기로 했다.


직장에 다니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중년의 가정주부들은 이웃들과 모여 수다떨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홍보대사'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 양동이 하나라도 제대로 팔기만 하면 곧바로 시너지효과가 나타났다. 덕분에 발품을 팔며 주부들을 직접 찾아다닌 영업 전략 역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이가성은 직접 장강실업이라는 플라스틱 공장을 세워 플라스틱 꽃을 생산, 판매하고 나섰다. 당시 이가성은 바이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플라스틱 꽃을 선보였고, 고객 대부분은 앙증맞고 정교한 디자인에 매료되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중에서도 오랜 단골이었던 한 바이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강실업의 낡은 공장에서 이토록 정교한 제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던 것이다. 


이가성은 자신있게 말했다.

"직접 우리 공장에 보러 오셔도 좋습니다. 비록 공장은 많이 낡았지만 플라스틱 꽃을 생산하는 설비는 완전 신형입니다. 게다가 제품을 연구해서 만드는 사람들도 모두 새로 뽑은 인력들입니다."


이어서 이가성이 제시한 가격은 또 한번 그들을 놀라게 했다. 바이어들이 저렴하고 질 좋은 물건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들은 너도나도 주문계약을 맺고자 했고, 이를 독점하기 위해 아예 50%의 계약금을 선지급하겠다는 사람까지 나섰다. 


이가성이 만든 플라스틱 꽃은 홍콩 전력과 동남아 일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단 몇 주 만에 홍콩 시내의 모든 꽃집이 장강에서 출시한 플라스틱 꽃으로 도배가 됐을 정도였다. 일반 가정집은 물론 사무실, 심지어 자동차에서도 플라스틱 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의 유행은 홍콩 소비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면서 장강의 명성 또한 날로 높아졌다. 이후 장강실업은 이가성의 지휘 아래 승승장구하며 사업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번은 어느 기자가 이가성에게 영업의 비결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본 '세일즈의 신' 하라 이치헤이가 69세 되던 해 어느 강연장에서 세일즈 성공 비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대답 대신 그 자리에서 갑자기 신발과 양말을 벗더니 질문자를 무대 위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발바닥을 한번 만져보시겠습니까?' 그의 발은 만져본 남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발바닥에 온통 굳은 살이 깊게 박이셨군요.' 그러자 하라 이치헤이가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걷고 더 부지런히 뛰었기 때문에 굳은살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었죠.' 순간 청중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이가성은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기자양반, 나야 당신에게 내 발바닥을 만져보라고 할 자격은 없소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내 발바닥의 굳은살 역시 꽤나 두텁다는 것이오."


그는 매일 아침 묵직한 샘플가방을 메고 홍콩 거리와 골목 곳곳을 부지런히 헤집고 다녔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덧붙였다. 


"남들이 8시간 뛰어다니면 저는 16시간씩 뛰어다녔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초반기에는 그저 남들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찻집 종업원 시절 이가성은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돌아다녀야 했다. 영업사원이 된 뒤에도 그는 여전히 배낭을 메고 쉬지 않고 골목을 뛰어다녔다.


부지런히 땀을 흘려야 그만큼의 수확이 돌아온다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진리를 그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다.





p345~348,

............중국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간웅을 들라면 으레 조조를 꼽는다. 그가 군웅세력들을 격파하고 북방지역을 평정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다름아닌 탁월한 정치적 군사적 재능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그는 '치세의 능신이자,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하지만 중국의 대문호 노신은 그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사람들은 '조조'하면 주저 없이 삼국연의에서 보여준 사악하고 간사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는 역사의 무대에서 항상 간신의 전형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조조를 정확히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사실 조조는 재능이 매우 풍부하고 적어도 영웅이란 대접을 받아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동시에 다음 세대를 개척한 영웅이며,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 또한 지니고 있었다. 조조야말로 중국 역사상 몇 안 되는 영걸 중 하나다.



노신이 이렇듯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조조에게도 분명 악인이 아닌 선인으로서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인재를 다룸에 있어 개인적인 친분에 상관없이 철저하게 능력을 기준삼아 적재적소에 배치했던 점이다. 둘째는 전략전술에 능했으며 어떤 일이든 몸소 행동으로 병사들에게 모범을 보여준 점이다. 셋째로 그는 과감한 결단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사실 앞의 두 가지 장점은 조조에게만 국한되는 특징이 아니다. 하지만 세 번째 결단력에 있어 조조는 여느 리더들을 능가하는 출중함을 보였다. 군대를 일으켜 전쟁에 임할 때나 정치무대에서 활약할 때, 그는 형세가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절대 억지로 밀어붙이거나 정면으로 돌진하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며 노를 젓듯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는 즉시 방향을 틀어 비켜갈 줄 알았다. '적당한 때에 멈추고 적당한 정도에서 물러서는' 이치를 항상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조조의 군대가 촉한의 군대가 점령하고 있는 한중지역을 공격할 때의 일이다. 첫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그가 다음 전략을 고심하고 있을 무렵 대장 사마의가 그에게 조언했다. 


"승세를 몰아 즉시 공격의 강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비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승리의 여세를 타고 촉의 영토 안으로 대군을 진군시켜 유비의 촉한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사람이 부족함을 느낄 때 가장 고통스럽다. 이미 농우를 얻었거늘, 다시 촉을 탐할 필요가 있는가?"


조조는 촉을 공격하는 모험을 감행할 필요 없이 적당히 좋을 때 공격을 거두자는 생각이었다. '어려움을 알고 적당할 때 물러슨 ㄴ것'도 조조에게는 일종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몇 년 후 유비가 맹렬한 기세로 한중을 공격해오자 조조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갔다.


만반의 태세를 갖춘 유비는 때를 기다리며 힘을 비축했다가 적이 지칠 때 역습하는 이른바 '이일대로' 전법과 가마솥 아래의 장작을 꺼내어 끓어 넘치는 것을 막는 '부저추신'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조조 군대의 군량미 보급로를 차단했다.


유비의 속셈을 단숨에 간파한 조조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원정을 떠나 군량미가 끊기면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곧바로 퇴각을 결정했다.


그날 저녁, 참모들이 전투명령을 받기 위해 조조를 찾아갔으나 그는 그릇 속 닭갈비로 시선을 떨구며 "계륵이군"하고 혼잣말을 툭 내뱉었다. 그 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참모들은 그것이 명령이겠거니 생각했으나 서기관 양수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병사들에게 철수준비를 하라고 비밀리에 지시했다. 누군가가 양수에게 어떻게 조조의 의중을 알았느냐고 질문하자 양수는 '계륵'에 대해 이렇게 풀이했다. 


 "계륵은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대로 버리기는 참으로 아깝지요. 이곳 한중땅이 바로 계륵과 같습니다. 따라서 버리기는 아깝지만 붙들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땅은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후에 조조는 군심을 어지럽혀 놓았다는 죄목으로 양수를 죽음으로 다스렸지만 결국 양수의 해석처럼 다음 날 바로 철수명령을 내렸다. 애써 싸운 보람도 없이 물러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조조는 군대의 역량을 소모시키지 않고 보전할 수 있었다.


이렇듯 조조는 위기 속에서 적당히 멈출 줄 알았기 때문에 정치적 군사적 우세를 유지해갔으며, 종국에는 위나라 건국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멈춤'의 미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그의 자손들은 사마씨에게 정권을 빼앗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